ROD GUEST ADMIN WRITE

“지금 헤어지자고 말하는 거야?”

나에게 오히려 되묻는 그는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언제부턴가 김재명은, 나와 함께 있을 때 저런 표정을 자주 지었다. 눈을 느슨하게 감고, 열을 재우려는 것처럼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처음에는 모른 척 했다. 원래 사랑이라는 건 모른 척을 얼마나 누가 오래 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김재명이 나에게 질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모른 척 했다. 요즘 야근이 많아서. 진현필 잔당들을 처리해야 해서. 신 경위가 자꾸 닦달해서. 그런 이유들을 가져다 붙였다. 나는 그 모른 척에 필사적이었다.

나는 여전히 김재명을 사랑했고,
김재명은 나에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우리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결이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결이 맞지 않으니까 끌렸다. 김재명은 나의 될 대로 되라 싶어 거칠게 찢긴 단면들을 좋아했다. 포옹이나 할까? 하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했지만 섹스는 했다. 포옹할 때는 안 한다고 했었잖아. 첫 섹스를 하고 내가 볼멘 소리로 묻자 김재명은 엎드려 누워 팔에 이마를 댄 채로, 고개만 돌려 씩 웃었다. 섹스하자고는 안 했잖아. 나에게 시달려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 그 목소리는 제법 사랑스러웠다.

김재명이 나의 포옹 제안을 거절하고 나서, 한 달 정도는 그와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그는 나와, ‘볼 장 다’ 봤기 때문에, 나를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고 나는 그를 매일 봤다. 뉴스에서는 매일 김재명의 얼굴이 나왔다. 우아하시고 고상하신 얼굴 탓에 그는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도 검색어에 올랐다. 저런 얼굴이 경찰이라고? 국가적 손실이다! 하는 댓글도 읽었다. 나는 김재명의 숨은 팬이 된 것처럼 그의 뉴스와 게시글을 모두 읽었다.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 속 김재명은 어쩐지 너무 멀어 보였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딱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비가 지독히도 내렸다. 낡은 고시원은 곰팡내가 났다. 수사를 하는 동안은 아지트나 김재명의 오피스텔에서 묵었던 터라 그 냄새가 이상할만치 구역질이 났다. 침대에 모로 누워 김재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김재명이 자꾸 생각났다.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손등도. 김재명은 다정한 면이 있었다. 꽤 무르기도 했다. 내가 총을 맞았을 때 그는 좀, 바보같이 자제력을 잃기도 했고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울기도 했었다. 같이 있을 때는 이상한 동지애라고 생각했다. 그와 멀어지고 나니까 나는 그게 사랑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돌아누웠다. 침대의 매트리스가 삐걱거렸고 곰팡내가 났다. 전화가 울렸다. 대출 전화 같아서 그냥 보지도 않고 받았다. 안 해요. 하고 묻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라, 형사님? 나는 그가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를 불렀고 그는 자신인 줄 어떻게 알았냐는 말도 없이 말했다. 내려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의 잘 빠진 차가 서 있었다. 어라, 무슨 일이래, 진짜. 하고 성급하게 내려가느라 계단에서 몇 번이나 굴렀다. 우산도 없이 그의 차에 빠르게 골인하고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랬다.

보고 싶었어.

좀 간지럽고 이상한 말이었는데 그 말에 김재명은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나도.

그 날부터 우리 둘 바깥에 공통의 외곽선이 생겼다. 우리는 같이 살았다. 김재명이 굳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고 베개를 하나 더 샀다. 나는 그의 소개로 작은 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텅 빈 포트폴리오에는 김재명의 추천사가 들어갔다. 출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만들거나 샀다. 같이 식탁에 앉았다. 밥을 먹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김재명의 어린 시절이었다. 나는 그가 교복을 입었을 때, 땀이 맺힌 팔뚝으로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상상했다. 김재명은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 말들을 해줬다. 그리고 같이 거울에 서서 양치를 했고 키스를 했다. 눈이 마주치면 섹스를 했다. 옷을 벗기는 손은 솔직했다. 김재명의 둥근 엉덩이와 곧은 다리 사이에 내 것을 비볐다. 김재명이 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쾌감에 울고 그런 것들이 다 좋았다.

둘 다 바빠서, 대부분 우리는 집에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보내는 작은 일상이 좋았다. 하지만 김재명은 달랐다. 김재명은 나의 거친 단면, 찢긴 종이, 접어둔 페이지를 사랑했었다. 내가 그 덕분에 단면을 사포로 갈고 접어둔 페이지를 다시 눌러 폈을 때 그는 어쩐지, 실망한 것 같았다.

“나갈 집은 있어?”

그는 사랑이 끝나는 소리에도 너무 덤덤하게 나를 걱정했다. 나는 저 말이 이제, 그가 다정해서가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알아서 할게.”
“뭘 알아서 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다음의 말에, ‘네가 알아서 한 게 뭐가 있어.’ 라는 진심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김재명을 사랑했다. 김재명은 나를 동정했다. 김재명의 잘못은 그 동정이 섹스 사이에 있어서 자신도 나를 사랑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 뿐이었고 나의 잘못은 그것을 먼저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 한 것이었다. 모른 척 하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로 나는 사랑에 간절했으니까, 간절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게 맞는 말이었다면 사람들은 모두 기도만 했을 텐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신경쓰지 마.”

원래 당신이 그랬어야만 했던 것처럼. 신경쓰지 마.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김재명은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는 너무 착했다. 오갈데가 없어진 내가,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날뛰고 나뒹구니 어쩔 수 없이 나와 좀 붙어 먹었다. 그러다 보니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완벽한 남자가 왜 나 같은 실수를 했을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엮이고 그 내포에 함께 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우리는 그랬다. 너무 달랐으니까.

“신경쓰지 마. 형사님이랑 헤어진다고 폐인처럼 살지는 않을게. 일도 계속 나갈 거고. 도움 필요하면 말할게. 집은 걱정마. 회사에 숙소 있었어. 말하면 해주실거야.”

거짓말이었다. 나는 조금씩 부서졌고 그와 헤어지면서 망가졌고 이미 폐인처럼 살 것을 계획하고 그 상상만으로 나를 해치고 죽이고 있었다. 일도 그만 둘 것이 뻔했고 그가 소개해준 회사에는 기숙사가 없다. 그런데 김재명이, 내 그 말에 다행이라는 것처럼 웃어서, 그래서, 나는 그냥, 거짓말을, 했다.

“박장군. 나는 네가...”

김재명은 이마를 짚었던 손을 뗐다. 내가 사랑하는 다갈색 눈. 사랑했던, 말고 사랑하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맞다. 그러니까 김재명은 나한테 헤어지자는 말을 잘 못 한 거다. 내가 있는 집에, 그 공간마저도 질려서 며칠간은 계속 야근을 하면서도 나한테 그런 말을 못했다.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내가 불행해질까봐. 나한테 그런 나쁜 짓은 못했다. 내가 혹시 불행해질까봐. 그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었다. 저건 진심이었다. 다만 내 행복에 자신이 함께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한테는 그게 불행이었는지도 모르고. 나는 애써 웃었다.

“알어. 형사님 생각. 나도 어른인데.”
“어쭈.”

그는 오래된 친구를 보내는 것처럼 홀가분해보였다. 짐 많으니까 정리할 때까지는 집에 있어도 된다고. 다용도실 쓰라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반지를 뺐다. 얇은 실반지는 우리 커플링이었다. 유일하게 함께 가지고 있던, 연약한 내포의 증거. 사랑이란 건 너무 불안해서, 연약하고 허술해서 불안해서 내가 그에게 내밀었던 것. 그가 식탁의 유리 위에 그것을 빼 올려 놓았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그의 사랑에서 멀게 밀려났다. 나는 이제 그의 외연에 있었다. 영원히 그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