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D GUEST ADMIN WRITE



당신이라는 사람의 기원

김재명 X 박장군

롯 쓰고 사랑함

 

 

명절을 싫어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명절 뿐만은 아니었다. 설날, 추석,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학교 축제, 입학식, 졸업식심지어 생일까지도. 사람들은 길거리에 북적였고 모두들 행복한 얼굴을 했다. 장군은 사람이 가득한 거리에서 자신은 지독하게도 외로운, 고독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즐거워야만 하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자신은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사람들의 소리가 싫었다. 웃거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 간지러운 말이 싫었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니까.

장군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외롭다는 말보다 더한 것을 알아갔다. 고독했다. 세상 속에 홀로 버려진 느낌. 아무도 없는, 모조리 죽어버리고 먼지만 쌓인 세상을 혼자서 영원히 걸어가야 하는 벌, 혹은 질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고 마주치고 웃는 눈동자가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쉬이 생기지 않아서 자신을 제외한 다정이 두렵고 치욕스러웠으며 경멸하는 척 했다. 아랫도리 가볍게 놀리면서 자신은 그런 것을 아주 우습게 보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독함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지독한 감정의 질병은 지능범죄수사대의 일원으로 들어와, 제법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이 많이 생겼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군은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 보다 두려웠다. 모두들 모여있어서 모른 척 했던 그것들, 자신은 아무데도 뿌리내리지 못했고 아무에게도 진정으로 사랑받거나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

장군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재명과 젬마의 도움으로 우울증 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진짜 고민을 말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정도로 알고 있을 테지만, 장군의 우울증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외상 후의 스트레스라면, 무엇이 나의 외상인가. 태어남? ?

장군은 오래도록 버려져서 살았다. 이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장군은 자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고 나면 좁은 고시촌 벽이 자신과 함께 감기에 걸린 것처럼 떨고 콜록거렸다. 그럴 때면 꼭 죽고 싶으면서도 죽고 나면 아무도 자신을 생각하거나 애도해주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죽는 순간보다 죽은 이후가 더 두려웠다. 사람들이 말하는 저승이라는 것,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것이 홀로 있는 광야나 미로일까봐 두려웠다. 그것이 저승이라면 차라리 영원히 살고 싶었다. 아니면 흔적조차, 태어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새벽녘에 깨면 장군은 불을 모두 끈 좁은 방 안에서 서성거리다가 심장이 터질 만큼 불안해지면 머리를 책상에 찧거나 밖으로 나가 몇 시간이고 달렸다. 반동강이 난 간이 쑤시며 고통을 호소하고 나면 그제서야 집에 와서 차가운 물을 맞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쯤되면 해가 떴다. 그러면 아무일 없던 것처럼 출근을 했다. 차라리 그러면 남들과 있을 수 있어서, 자신이 어딘가에 속한 것 같아서 덜 두려웠고 괜히 더 너스레를 떨었다. 왜 이렇게 피곤해보이냐는 말에 장군은 야동 봤어요, 왜요. 하고 농담을 했다. 지수대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김재명만 빼고

김재명은 장군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입을 꾹 다물고 그를 깊이 쳐다보았다. 장군은, 재명이 혹시 그를 박장군, 하고 부르며 거짓말 하지마. 하고 말할까봐, 그가 조금이라도 제 고독을 알아챌까봐 고개를 훽 돌리고는 했다. 재명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장군에게는 그랬다. 과묵한 편이었지만 표정이 많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팔짱을 끼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어도 훤히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 훤히 보이는 생각에 조금도 오점이나 굴절이 없었고 그래서 타인에게 비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군은 그 갈색의 눈동자가 두려웠다. 햇빛을 담은 것처럼 가끔은 노랗게까지도 보이는 눈, 자신의 표정이, 아니, 자신의 뿌리없음과 고독이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그런 눈. 그래서 재명이 장군에게 자신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오라는 가벼운 제안을 했을 때도 장군은 그의 저의를 의심했다.

?”

, 그 날 다른 일정이라도 있나?”

장군은 재명의 표정을 살피려고 했지만 재명은 장군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됐군.”

재명은 이견은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 탁탁 소리를 내서 서류를 정리하고는 먼저 일어났다.

편할 때 와. 저녁 시간 언제든, 네가 저녁 먹을 때.”

.”

설날 연휴에 처음이 좋지 않았던 사람을 불러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장군은 재명의 말을 의심하고 곱씹었다. 아마도 저를 동정해서겠지, 하고 장군은 빨리 결론을 내렸다. 장군은 고민하다 정말로 자신이 저녁을 먹는 여덟시쯤 재명의 집으로 갔다. 진현필을 잡기 위해 모였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조금 어두운 오피스텔. 어서 와, 하고 문을 열어주고 장군이 들어오기 위해 살짝 옆으로 비켜 서 주는 재명 또한 변하지 않았다. 집에서 늘 입는 스타일이 정해져 있는 것인지, 옷도 저번에 입었던 것과 색만 다르고 비슷했다. 장군은 옆으로 눈을 흘겨, 저번에는 진현필의 이동 경로며 수사 자료가 덕지덕지 붙어 있던 창문과 벽을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벽지도 새로 바른 모양인지 연한 아이보리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고상하시네?”

라는 말에, 피식 웃는 것도 비슷하고. 장군은 빈 손으로 오기 뭣 해서 사왔다며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 하는 수입 맥주를 꽉꽉 눌러담은 검은 비닐봉투를 내밀었고 재명은 바로 두 캔을 탁자에 꺼냈다.

편하게 앉아.”

장군은 재명을 멋쩍게 올려다보며 식탁에 앉았다. 재명과 꽤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 왔으면서도 둘만 있는 것은 오랜만이라 어색해 장군이 괜히 머리를 벅벅 긁었지만, 열심히 잡채며 전 등을 그릇에 옮겨담는 재명에게서는 조금이라도 어색해하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마 형사님이 한 건 아닐테고. 산 거야?”

고향에서 보내줬어. 일하시는 이모님이.”

부모님이나 형제가 아니라? 장군은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보니, 재명의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성격상 제멋대로 하는 게 몸에 배어 있으니 도련님일 것이라 예상했고, ‘이모님이라는 말이 뒷받침 해주는 것 아닌가? 만두까지 소담스럽게 들어간 떡국을 한가득 퍼서 장군의 앞에 내려놓으며, 재명은 그의 표정을 보고 픽 웃었다.

, 궁금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군.”

그래?”

재명은 장군이 사온 맥주를 탁 소리나게 따며 씩 웃었다.

대답해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겠군.”

재수없어. 장군은 용케도 그 말은 참고 재명이 권하는대로 식사를 했다. 재명은 잡채를 잘 먹었으나 떡국은 아예 퍼지도 않았고, 산적이나 잡채를 씹으며 맥주를 마셨다. 가끔 장군에게 뭐 더 줄까? 하고 묻기도 했지만.

형사님은 시골인데 안 가? 일도 이번에 없잖아.”

그래서 음식 보내주셨으니까.”

연락이라도-”

박장군.”

재명의 표정이 꼭, 닥치고 먹으라는 것 같아서 장군은 입맛이 뚝 떨어졌다. 혼자서 청승 떨기 싫어서 부른 건가? 장군이 반도 비우지 않은 떡국에서 숟가락을 떼자 재명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부모님이랑 별로 친하지도 않고. 내 성격에 살갑게 대하기도 싫고.”

알긴 아네. 장군은 픽 웃었고 다시 숟가락을 집어 떡국을 휘적거렸다.

왜 싫은데요?”

그냥. 사람이란 건.”

맥주 캔을 겨우 하나만 비우고서 취하지도 않았을 텐데, 재명은 어쩐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누구나 기원이 있어. 그 뿌리가 있다고. 어딜 가도 그 뿌리는 사라지지 않아.”

재명의 말에 장군의 마음이 덜컥거렸다. 그 동안 제가 해온 생각을 들키는 것만 같아서.

너는 언제나 떠다닌다고 했지? 부표처럼. 아냐. 뿌리가 있어야더 잘 떠다닐 수 있는거야.”

재명은 맥주를 한 캔 더 땄다. 한 번에 반쯤 맥주캔을 비워버리고서, 재명은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속삭였다.

나는뿌리가 없어. 떠다닐 데가 없어.”

숨이 막혔다. 장군은 재명을 바라봤고 재명은 비뚜름하게 웃었다. 이런 것은 원하지 않았다. 당신이 내게 이런 투명한 것까지 비쳐보이면서 우울을 쏟아내기는 바라지 않았는데.

오늘, 왜 형사님 집에 오라고 했어요? 이런 얘기 하려고 불렀어요?”

아니.”

외로워서.”

외로워서 불렀어, 박장군.”

자신을 올려다보는 김재명의 눈가가 붉었다. 술을 마셔서 텄을 그 눈가가 꼭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외로워서외로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어. 그게 다야.”

재명이 우는 것 같았다. 장군은 어색하게, 숙인 재명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댔다. 엷게 흔들리는 어깨가 지진 같았다. 


이 고독한 흔들림의 기원은 어디인지.